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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유적지

국가 지정 문화재

  •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 태화강 지류에 해당하는 대곡천변의 깎아지른 절벽에 너비 약 8m 높이 약 3m 가량의 판판한 수직 암면에 그림이 집중적으로 새겨져 있다. 주변 10곳의 암면에서 확인되는 소수의 그림을 포함하여 모두 307점의 형상이 표현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림은 주제에 따라 크게 인물상(人物象), 동물상(動物象), 도구상(道具象), 미상(謎象)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인물상은 측면(側面)을 표현한 전신상이 많으며 활로 동물을 사냥하거나 두 손을 치켜든 모습, 악기로 보이는 긴 막대기를 불고 있는 모습 등은 사냥과 일종의 종교적 행위를 연상시키고 있다. 측면 전신상의 대부분은 다소 과장된 남근(男根)을 표현하고 있으며, 사지를 벌리고 있는 정면상이나 가면처럼 얼굴을 표현한 그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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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전리 각석
    천전리 각석

    천전리 각석은 1970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학계에 알려진 유적으로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는 너비 약 9.5m 높이 약 2.7m 장방형으로 위쪽이 앞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천전리 각석에는 선사시대 암각화뿐만 아니라 신라시대 행렬모습과 돛을 단 배, 말과 용 그림 등 날카로운 도구로 새겨진 세선화와 신라시대 명문 등이 덧새겨져 있다. 선사시대 암각화는 제작기법과 유형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쪼기로 새긴 동물과 사람, 추상적인 기호 그림으로 암면 좌측 중앙부에 많이 확인된다. 다음으로 쪼아서 새긴 그림 위에 덧새겨진 마름모꼴, 원형의 둥근 무늬, 물결무늬 등 추상적인 문양들로 암면의 위쪽에서 중앙부까지 넓게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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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

    울주 간월사지 석조여래좌상은 울산지역에서 보물로 지정된 유일한 불상이다. 그 높이는 1.35m이며, 전체적으로 볼 때 비교적 안정감을 준다. 둥근 머리에는 육계가 거의 나타나지 않고, 큼직한 나발을 촘촘히 새겼다. 얼굴은 몸에 비해 작고 둥글다. 눈은 반개하여 부처의 명상적인 모습을 표현하였으며, 이마 중앙에는 백호가 있었던 자국이 있다. 코 넓이와 같게 입술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단단하게 세운 목에는 삼도가 큼직하고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신체는 어깨가 좁고 빈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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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주 망해사지 승탑
    울주 망해사지 승탑

    망해사지 승탑 2기는 망해사(望海寺) 터에 남아 있던 것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에 의하면 망해사는 신라 헌강왕(憲康王 :재위 875〜886) 시기, 동해 용(龍)을 위해 세운 절이라 한다. 그 이후의 기록은 전해지지 않아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 폐사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망해사지 승탑은 1960년에 복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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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주 석남사 승탑
    울주 석남사 승탑

    석남사는 824년(신라 헌덕왕 16년)에 도의국사(道義國師)가 처음 세웠다고 전한다. 승탑(僧塔)은 이름난 스님들의 유골(遺骨)을 모시기 위해 세운 돌탑을 말한다. 석남사 승탑은 대웅전 뒤편 언덕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재질은 화강암으로, 높이는 3.53m에 이른다. 전체적으로 폭이 좁은 팔각지대석 위에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으로 기단부를 만들었다. 탑신과 옥개석, 상륜부가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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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송사지 삼층석탑
    청송사지 삼층석탑

    청송사의 터에 있는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건립한 전형적인 신라의 석탑이다. 기단부의 면석에는 우주와 탱주가 각각 모각되어 있다. 탑신부는 3층이며, 각 층의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 1매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각 층의 탑신석에는 우주만 모각되어 있으며, 다른 조각은 새겨져 있지 않다. 각 층의 옥개석은 하단에 5단의 옥개받침을 마련하고, 상단에는 각형 2단의 탑신받침을 가지고 있다. 상륜부는 노반만이 남아있으며, 나머지 부재는 결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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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단리 유적
    검단리 유적

    울주 검단리 유적은 완전한 형태의 청동기시대 환호마을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조사된 곳이다. 발견된 유구와 유물은 검단리식 주거지와 토기 등으로 울산을 비롯한 동남해안권 청동기시대 문화의 표지가 되었다. 발굴조사는 1990년 부산대박물관에서 시행하였으며, 마을구간은 현재 성토되어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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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양읍성
    언양읍성

    지방의 행정 및 군사 중심지에 세워졌던 읍성은 객사와 동헌을 핵심시설로 각 군현의 주민과 관리를 보호하고 그들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언양읍성은 1390년(공양왕2)에 처음 토성으로 축조되어, 1500년(연산군6)에 현감 이담룡이 석성으로 고쳐 쌓으면서 확장한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성의 둘레는 3,064척(약1,500m), 높이는 13척(6.3m)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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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황산 요지군
    천황산 요지군

    조선시대에 청자(靑磁), 백자(白磁), 분청사기(粉靑沙器) 등을 굽던 가마터가 여기 저기 무리를 이루어 남아 있는 곳이어서 요지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에서 흩어진 채 발견되는 파편들로 확인된 그릇의 종류로는 대접, 접시, 종지, 병, 태항아리[胎壺], 합(盒)등이 있다. 수습된 파편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으로는 ‘언양인수(彦陽仁壽)’, ‘장흥(長興)’,‘순(順)’, ‘예(禮)’ 등 조선시대의 관청 이름과 관련이 있는 명문편(銘文片)들이 있는데, 가마터의 성격과 조업시기를 알려 주는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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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주 구량리 은행나무
    울주 구량리 은행나무

    조선 초기에 이지대(李之帶) 선생이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선생은 고려 후기의 유명한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4대손이다. 1394년(조선 태조 3년) 경상도 수군만호(水軍萬戶)로 있으면서 왜구(倭寇)가 탄 배를 붙잡은 공으로 임금으로부터 상(賞)을 받았으며, 그 후 벼슬이 높아져 한성판윤(漢城判尹)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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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도 상록수림
    목도 상록수림

    목도의 면적은 15,074㎡이며, 상록수림이 섬 전체에 고루 분포하고 있다. 이 상록수들은 울산의 자연과 한반도의 난·온대 기후를 대표하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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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천리 국상생 석표
    상천리 국상생 석표

    이 돌비석은 통도사(通度寺)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세운 장생(長生, 혹은 長牲)으로서 ‘장승’이라고도 한다. 장생은 수호신, 이정표, 경계표 등의 역할을 하며, 풍수지리설과 함께 민속신앙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장생은 경계 표시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국장생’이라고 한 것은 국가의 명에 의해 건립된 장생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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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남사 삼층석탑
    석남사 삼층석탑

    석남사 삼층석탑은 극락전 앞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높이는 2.5m이다. 원래 대웅전 앞에 있었으나, 1973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석탑의 하층 기단은 여러 장의 판석을 이용하여 결구하고 사방에 안상을 조각하였다. 그 상부에는 4매의 판석으로 구성하여 상층기단을 올렸다. 기단의 면석에는 2개의 우주와 1개의 탱주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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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흥사지
    운흥사지

    운흥사는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시기,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고려 말 지공대사가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1614년(광해군 6)에 대희선사가 재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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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양향교
    언양향교

    향교는 조선시대의 공식적인 지방 교육기관으로, 교과내용은 시문을 짓는 사장학(詞章學)과 유교 경전을 공부하는 경학으로 이루어져있다. 향교 건물은 문묘(文廟)와 학당(學堂)으로 나누어진다. 문묘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중국의 사성(四聖)·이현(二賢)과 우리나라 십팔현(十八賢)을 모신 대성전(大成殿)과 동·서무(東·西黛)가 있다. 학당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의실인 명륜당(明倫堂)과 기숙사인 동·서재(東·西齋)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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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양현 호적대장
    언양현 호적대장

    호적대장은 조선시대에 백성들에게 세금을 매기거나 나라에서 필요한 노동력을 얻기 위해 작성한 호구조사 기록문서이다. 호적대장의 작성은 3년마다 만들었으며, 각 읍·면에서 감독관이 각 집안별로 호구단자(실태조사기록) 2부를 만들어 군현에 보내졌다. 군 현에서는 호구단자를 호적과 비교한 후 1부는 호주에게 교부하고 1부는 호적작성의 자료로 삼았다. 또한 군현에서는 호적을 3부로 만들어 1부는 군현에, 1부는 감영에, 1부는 호조에서 관리하여 세금을 매기는 자료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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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송사지 부도
    청송사지 부도

    이 부도는 청송사의 터에서 발견된 것이다. 보물 제382호 울주 청송사지 삼층석탑과 약 100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에 부도 파변이 산재하고 있어, 이 일대가 일명 ‘부도골’로 불리기도 하였다. 모두 3기로 조선시대의 돌종 모양[石鐘形]부도이다. 부도는 이름난 스님들의 유골(遺骨)을 모시기 위해 세운 돌탑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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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월사지
    간월사지

    간월사터는 간월산 해발 215m정도에 동쪽방향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폐사된 이후 주위가 대부분 경작지로 이용되었다. 1984년 학술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며, 그 뒤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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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단리 지석묘군
    검단리 지석묘군

    검단리 지석묘군은 웅촌면 면소재지에서 고연리로 연결되는 도로 옆에 3기가 모여 있는데, 덮개돌은 화강암으로 논두렁에 비스듬히 놓여 있다. 크기는 3기중 제일 큰 것이 길이 300㎝, 너비250㎝, 두께 50㎝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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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대리 고분
    대대리 고분

    대대리 고분은 울산에서 부산으로 가는 7번 국도변에 단독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에서 확인된 삼국시대의 무덤이 산등성이에 위치하는 것과 달리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정식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내부 유구의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봉분의 높이 등으로 보아 6세기경에 만들어진 석실묘(石室墓)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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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대리 상대고분
    대대리 상대고분

    대대리 상대 고분의 일대에는 삼국시대 무덤이 조밀하게 분포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이 고분은 지름 15m, 높이 2.5m 정도로 비교적 뚜렷하다.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내부구조나 시기 등을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주변에서 채집된 토기편과 외형의 특징으로 보아 이 고분의 주인은 상당한 세력을 가졌던 인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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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화리 지석묘
    만화리 지석묘

    만화리 지석묘는 1기로서 두동면 만화리 비조마을 회관 옆에 위치하고 있다. 덮개돌은 화강암으로 비스듬히 뉘어 있으며, 네모꼴에 가까운데 크기는 길이 260㎝, 너비 185㎝, 두께 120㎝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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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수산성지
    문수산성지

    문수산성은 문수산(해발 599m)의 8부 능선에서 정상을 따라 테를 두르듯이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성내에서 수습된 토기편과 기와편 등으로 볼 때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울산·언양 일대를 방비할 목적으로 축조된 산성이라고 추정된다. 자연 유실로 훼손이 심하지만, 체성(體城)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서로 물리는 방식으로 협축(夾築-성벽의 안팎을 모두 수직에 가까운 석벽으로 쌓는 방법)하였으며, 그 단면은 사다리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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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상 유적
    박제상 유적

    박제상은 신라 눌지왕 시기 활동한 충신이다.『삼국사기』에서는 신라 시조 혁거세(赫居世)의 후손으로 제5대 파사이사금의 5대 손이며 할아버지는 아도갈문왕(阿道葛文王), 아버지는 파진찬(波珍飡) 물품(勿品)으로 되어 있다. 당시 신라는 고구려 및 왜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물왕의 둘째아들 복호를 고구려에, 셋째아들 미사흔을 왜에 볼모로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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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기리 알바위
    방기리 알바위

    알바위는 알[卵] 모양의 구멍들이 있는 바위라는 뜻이다. 이 구멍들은 돌 표면을 쪼아서 형태를 잡은 다음 회전 마찰을 통해 다듬은 것으로, 성혈(性穴)이라고도 한다. 주로 고인돌의 덮개돌이나 자연암반에 새겨지며, 흔히 ‘알구멍’, ‘알바위’ 등으로 불린다. 성혈은 주로 태양, 여성의 성기 등을 상징하며, 이는 풍요와 다산의 의미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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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곡리 지석묘군
    반곡리 지석묘군

    반곡리 지석묘군은 반곡리 옥동마을 저수지옆 경작지에 위치하며, 서로 80m정도의 거리를 두고 각각 1기씩 자리잡고 있다. 이 일대는 고헌산의 동남쪽 능선자락으로 지석묘는 해발 30~40m정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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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안리 지석묘군
    복안리 지석묘군

    복안리 지석묘는 천마산의 동쪽 구릉 하단부인 두서면 복안리 음지마을 뒤쪽 계단식 경작지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 일대의 야산과 경작지에는 청동기시대에 해당되는 토기가 확인되고 있다. 덮개돌은 화강암으로 반듯하게 놓여 있는데 한쪽이 깨어져 있으며, 크기는 길이 390㎝,너비 340㎝, 두께 140㎝이다. 아래에는 받침돌 1개가 관찰되는 것으로 보아 바둑판식 지석묘로 추정된다. 내부 구조는 학술 조사를 실시하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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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동라잠리 요지군
    삼동 하잠리 요지군

    조선시대에 청자(靑磁), 백자(白磁), 분청사기(粉靑沙器) 등을 굽던 가마터가 여기 저기 무리를 이루어 남아 있는 곳이어서 요지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에서 흩어진 채 발견되는 파편들로 확인된 그릇의 종류로는 대접, 접시, 종지, 병, 태항아리[胎壺], 합(盒)등이 있다. 수습된 파편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으로는 ‘언양인수(彦陽仁壽)’, ‘장흥(長興)’,‘순(順)’, ‘예(禮)’ 등 조선시대의 관청 이름과 관련이 있는 명문편(銘文片)들이 있는데, 가마터의 성격과 조업시기를 알려 주는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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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생포 만호진성
    서생포 만호진성

    조선시대 전기 울산에는 서생포 만호진성, 염포진성, 개운포진성 등 세 곳의 수군진성(水軍鎭城)이 있었다. 진성은 국경 및 해안지대 등 국방상 중요한 곳을 보호하는 성을 가리킨다. 서생포 만포진성은 구릉의 경사면과 평지를 연결하여 축조한 포곡식(包谷式)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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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생 이길봉수대
    서생 이길봉수대

    봉수는 높은 산에 올라 밤에는 횃불과 낮에는 연기로 적의 동태나 민정 상황 등을 알렸던 통신제도이다. 군사적인 목적으로 봉수가 사용된 것은 고려 중기로 추정되며, 1149년(의종 3)에는 봉수의 거화수(炬火數)를 규정하고, 봉수군에게 생활의 대책을 마련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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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양 부로산봉수대
    언양 부로산봉수대

    봉수는 높은 산에 올라 밤에는 횃불과 낮에는 연기로 적의 동태나 민정 상황 등을 알렸던 통신제도이다. 군사적인 목적으로 봉수가 사용된 것은 고려 중기로 추정되며, 1149년(의종 3)에는 봉수의 거화수(炬火數)를 규정하고, 봉수군에게 생활의 대책을 마련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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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양 지석묘
    언양 지석묘

    ​언양 지석묘는 규모로 보아 영남지역 일대에서 가장 큰 바둑판식 고인돌이다. 지석묘의 상석은 길이 8.5m, 너비 5.3m의 덮개돌이 사다리꼴 모양으로 비스듬히 놓여 있다. 지석은 6매 정도이고, 받침돌 크기는 2.8m〜3.1m 정도로 거대한 편이다. 서부리 주민들은 이 지석묘를 ‘용바우’라고 부르며, 민속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아직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지하의 돌방 형태나 출토 유물은 알 수 없지만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덮개돌이 매우 큰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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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양 천전리성
    언양 천전리성

    언양 천전리성은 울주군 상북면 명촌리 산성산(山城山)의 8부 능선을 따라 돌로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주로 왜구 방비를 목적으로 축조한 산성으로 추정된다.『언양읍지(彦陽邑誌)』에는 “둘레가 2천 척(尺)이고, 성 안에 우물이 있다”고 했으며, “임진왜란 때에 의병(義兵)들이 주둔했던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성은 임진왜란 때 언양지역의 의병 활동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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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보리 지석묘군
    인보리 지석묘군

    인보리 지석묘군은 백운산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있는 구릉의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이 일대는 언양에서 경주로 연결되는 곳으로 유적 주변의 구릉일대에서 무문토기가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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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편리 지석묘군
    은편리 지석묘군

    은편리 지석묘군은 북서쪽으로 뻗어 내린 국수봉의 나지막한 능선 자락에 위치하며 현재 은편리 숲안마을의 서쪽 편에 있다. 이 지석묘군은 바둑판식으로 추정되며, 3기(基)의 지석묘가 한 장소에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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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현리 적석총
    은현리 적석총

    적석총(積石塚,돌무지 무덤)은 선시시대부터 역사시대의 고구려, 백제 초기에 나타나는 묘제의 한가지로, 일정한 구역의 지면에 구덩이를 파거나 구덩이 없이 시체를 놓고 그 위에 돌로 쌓은 무덤을 말한다. 고구려의 경우 초기에는 강돌을 주로 사용하였으나, 이후 깬 돌을 계단식으로 쌓아올려 무덤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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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율리 영축사지
    율리 영축사지

    영축사지(靈鷲寺址)는 영축산, 문수산, 남암산 등 사면이 산등성이와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고 구릉 능선 말단부의 평지에 위치한다. 영축사지 주변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인 망해사지와 청송사지가 1㎞내외의 거리에 있어, 이 일대가 통일신라시대 울산 불교문화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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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열공김취려의 묘
    위열공 김취려의 묘

    김취려(?~1234)는 언양현 사람으로 아버지인 김부는 예부시랑(禮部侍郞)을 지냈다. 그는 1216년(고려 고종 3)부터 1219년(고종 6)까지 거란군의 여러 차례 공격을 물리쳐 나라를 어려움에서 구하였다. 당시 13세기 동아시아의 정세는 몽골이 크게 흥기하고 있었으며, 거란 역시 몽골의 공격을 받아 1216년 압록강을 건너 고려의 북방지역으로 밀려오게 되었다. 이때 김취려는 대장군으로 조양진(평안남도 개천시 조양)에서 거란군을 물리쳤고, 연주(평안북도 영변군)에서도 거란군의 포위를 돌파하였다. 이에 거란군은 청새진(淸塞鎭: 평안북도 희천)을 넘어 퇴거하였다. 이 전투에서 맏아들이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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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내리지석묘
    지내리 지석묘

    이 지내리 지석묘는 바둑판식으로 언양 송대리에서 상북 지내리의 신리마을로 연결되는 작은 길가에 위치한다. 현재 남아 있는 덮개돌은 길이 290cm, 너비 280cm, 두께 170cm 정도로, 받침돌로 보여지는 것은 4매가 관찰되며, 상석단면은 삼각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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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산봉수대
    하산봉수대

    봉수는 높은 산에 올라 밤에는 횃불과 낮에는 연기로 적의 동태나 민정 상황 등을 알렸던 통신제도이다. 군사적인 목적으로 봉수가 사용된 것은 고려 중기로 추정되며, 1149년(의종 3)에는 봉수의 거화수(炬火數)를 규정하고, 봉수군에게 생활의 대책을 마련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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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향산리지석묘
    향산리 지석묘

    향산리 지석묘는 상북면 향산리 함박들 맞은편에 위치하며, 상북면 일대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지석묘 가운데 하나로, 그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현재 남아 있는 덮개돌은 길이 310cm, 너비 300cm, 두께 90cm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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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곡리 공룡발자국 화석
    대곡리 공룡발자국 화석

    대곡리 공룡발자국화석은 입자가 고운 사질 이암층에 보존되어 있다. 공룡발자국과 함께 물결자국, 건열 등의 퇴적구조와 무척추동물의 생흔화석(고생물 활동이 지층 속에 보존된 것)들이 관찰된다. 특히 물결자국이 잘 발달되어 있다. 이 퇴적층은 하천 주변의 범람원에서 퇴적된 지층이다. 공룡발자국은 총 8개가 확인되며, 초식공룡인 용각류와 조각류의 발자국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보행렬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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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정헌
    만정헌

    만정헌은 15세기 중엽 현감 김자간(金自幹)이 경주에서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세운 계림 김씨의 정각이다. 마루 액자에는 명헌(鳴軒)이라고 되어 있지만, 만년각(萬年閣)으로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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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옥산성
    비옥산성

    비옥산성은 온양읍 동상리(東上里) 상서(上西)마을의 북쪽 비옥산 산정에 위치하여 동상리 성지(城址)라고도 부른다. 체성(體城)은 북서〜남동 방향이며 남쪽으로 회야강과 남창지역을 관망하기에 좋다. 성벽은 길이 500m, 높이 150㎝정도 남아 있으며, 평면은 원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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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생포 왜성
    서생포 왜성

    왜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信秀吉)가 일으킨 임진왜란(1592년)과 정유재란(1597년)시기 우리나라 동남해안을 중심으로 쌓은 일본식 성을 말하며, 우리나라에 약 30여개가 축조되었다. 서생포왜성은 임진왜란시기 1593년(선조26)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지휘하여 쌓은 일본식 성이다. 부산진을 함락시킨 왜군은 경주, 안동, 문경 등 경상도 내륙지방의 진군을 위해 이곳에 왜성을 쌓아 거점을 확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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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계 서원
    석계 서원

    석계서원(石溪書院)은 충숙공(忠肅公) 이예(李藝, 1373〜1445년)선생을 배향(配享)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그 전신(前身)은 은월봉(隱月峰) 아래에 있었던 용연사(龍淵祠, 1737년 창건)이며, 1782년(정조 6)에 현재의 위치에 옮겨 짓고, 이름을 석계사(石溪祠)라 하였다. 이후 1860년(철종 11)에 석계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이후 1915년에 강당인 경수당(敬守堂)과 출입문인 필동문(必東門)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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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천리 이씨고가
    석천리 이씨고가

    임란공신(壬亂功臣) 이겸익(李謙益)의 후손인 근재공(謹齋公) 이의창(李宜昌, 1725〜1781년)이 1765년(조선 영조 41년)에 웅촌면 대대리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운 것이다. 조선 고종 때 한 차례 고치고, 1934년에 안채와 사랑채 등 건물이 대대적으로 중수되었다. 현재 건물은 사랑해, 안채, 사당, 아래채, 중문간 및 내고, 곳간채, 외양간, 대문간채 등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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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남사 수조
    석남사 수조

    수조는 나무나 돌로 만들어 물을 받아 두거나 사용하는 통으로,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물을 담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석남사 수조는 길이 2.7m, 높이 0.9m, 너비 1m, 두께 14cm로 보통의 물통보다 훨씬 크다. 절에서 사용되는 수조는 일반적으로 직사각형이나, 이 수조는 모서리의 안과 밖을 둥글게 다듬어, 조형미가 한층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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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화리 성지
    운화리 성지

    운화리성은 대운산(해발 742m) 동쪽 지맥의 한 봉우리(270m)와 그 아래의 능선과 계곡을 성내로 포용하며 쌓은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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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증 공조참판 엄공 원강서원비
    증 공조참판 엄공 원강서원비

    이 비석은 엄흥도(嚴興道)의 충절을 기리는 원강서원(圓岡書院)의 묘정비(廟庭碑)이다. 엄흥도는 본래 영월의 호장(戶長)이었다. 단종(端宗)이 세조에 의해 영월에 유배되었다가 1457년 10월 죽음을 당하자, 엄흥도는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고 단종의 시신을 몰래 거두고 장례를 지냈다. 그 충절이 인정되어 후에 공조참판에 추증(追贈)되었다. 영조 때 충의를 기리는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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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전리공룡 발자국화석
    천전리공룡 발자국화석

    천전리 공룡발자국 화석산지는 공룡발자국들이 이암층에 보존되어 있으며 건열, 물결자국, 사층리 등의 퇴적구조와 무척추동물의 흔적화석들이 관찰된다. 공룡발자국이 포함된 지층은 이암과 셰일이 서로 포개어져 있으며, 곳곳에 사암이 협재되어 있다. 공룡발자국은 총 131개가 확인되었으며, 초식공룡인 조각류와 용각류의 발자국이 관찰된다. 하상에 인접하여 발자국의 보존상태가 좋지 못하며 많은 발자국들이 불규칙하게 배열되어 개별 공룡의 보행렬은 구별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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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성이씨 현령공파 절송공묘 출토유물
    학성이씨 현령공파 절송공묘 출토유물

    이 출토유물은 학성이씨 현령공파로 어모장군(禦侮將軍) 용양위좌부장(龍蚊衛左部將)을 지낸 절송공 이충립(李忠立)의 묘에서 나온 것이다. 이충립의 묘는 본래 울산광역시 남구 부곡동 한터마을 어귀에 위치하였다. 그러나 이 지역이 울산 정유공장 부지로 편입됨에 따라 1988년에 묘를 옮기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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