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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문화원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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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인홍 구술자는 1955년 신리마을에서 태어났다. 15살부터 과수원 개간 일을 들기 시작해 50여 년간 과수원 일을 해왔다. ‘서생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긍지를 가지고 있는 '서생배 전문가' 이다. 마을 일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마을 전문가’이기도 하다.
    신리마을 - 장인홍 서생면 신암리
  • 장기숙 구술자는 포항에서 태어나 남편과 결혼 후 신리마을에 이주해 놨다. 토박이는 아니지만 쌈밥집과 의류점, 조리사 일, 서생면사무소의 복지상담원 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며 여러 사람을 도우며 살아왔다.
    신리마을 - 장기숙 서생면 신암리
  • 장금자 구술자는 1952년 신리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에서 초등학교를 졸업 후 어업에 종사하는 부모님을 도와 가정 살림과 동생들 돌보기를 맡아왔다. 잘 살기 위해 물질하는 어머니의 권유로 지금까지 해녀를 하고 있다.
    신리마을 - 장금자 서생면 신암리
  • 임종만 구술자는 1964년 신리마을에서 태어났다.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부산에서 아르바이트와 재수 학원을 다녔다.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방면에서의 삶을 개척해가고자 했던 열정이 남달랐다. 해인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신리마을 - 임종만 서생면 신암리
  • 이귀매 구술자는 부산 기장군 상리에서 태어났다. 생활이 어려워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를 도와 품팔이로 돈을 벌기도 하였다. 화장품도 낭비라 생각할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결혼 후 미역, 다시마 양식을 하다 호기심으로 해녀일을 시작하였다. 여러 사업이 번창하였으나 남편과 사별 후 IMF를 겪기도 하였다.
    신리마을 - 이귀매 서생면 신암리
  • 윤정길 구술자는 신리마을에서 태어난 토박이다. 군대를 제외하면 마을을 떠난적이 없다. 마을에 각별한 애향심이 있다. 집안은 부유하였으나 장남이 아니라는 이유로 초등학교만 졸업하였다. 마을의 주 생업인 어업과 과수에 직접 종사하면서 어촌계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신리마을 - 윤정길 서생면 신암리
  • 윤육녀 구술자는 1965년 12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참전 후 부상을 입었음에도 12남매를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목수 일을 해오신 아버지를 보며 삶의 태도를 배웠다.
    신리마을 - 윤육녀 서생면 신암리
  • 신옥희 구술자는 서생면 술마마을 출신이다. 어린 시절부터 워낙 일을 잘해 이를 눈여겨본 시이모의 소개로 지금 집에 시집을 왔다. 고된 시집살이와 함께 시어른이 일궈 놓은 과수원 농사는 물론, 논농사, 밭농사, 바닷일 등 가리지 않고 일했다. 지금은 힘든 일 다 그만두고 자신이 가꾼 채전밭에서 나는 채소를 팔며 소박하면서도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신리마을 - 신옥희 서생면 신암리
  • 배임이 구술자는 울주군 서생면 진하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부산의 섬유공장에 일하다가, 돌아온 고향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하여 신리마을에 살게 되었다. 집안에 보탬이 되고자 시작한 해녀 일은 세월이 흘러 어느덧 40년이나 되었고 해녀 중 가장 높은 단계로 인정해 주는 이른 바 ‘상군해녀’가 된 자신을 바라보면서 남다른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신리마을 - 배임이 서생면 신암리
  • 박운기 구술자는 1951년 신리마을에서 태어났다. 남보다 늦은 열 살에 서생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다른 친구들은 학교에 열심히 다닐 열여섯 살 어린나이부터 골매에서 생산되던 ‘토탄’을 캐는 등 생업 현장에서 일하였다. 명태잡이 배를 타다 손가락을 세 개를 잃기도 하였다.
    신리마을 - 박운기 서생면 신암리
  • 김형수 구술자는 신리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마산 등 객지에서 직장생활과 여러 사업을 하다가, 신리마을에 원전이 들어선다는 소문을 듣고 새로운 사업을 위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와서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의 위원장을 맡기도 하는 등 마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여러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신리마을 - 김형수 서생면 신암리
  • 김학도 구술자는 신리마을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원호청에서 지원하는 기술훈련소 교육을 받고 당시 기장군 일광면에 있었던 ‘한국유리’ 공장에 취업하게 된다. 결혼 후에는 울산에서 건설업에 종사하다 IMF 때 그만두고 고향 신리마을로 돌아와 호접란 농사를 시작했다. 마을 이장과 어촌계장을 역임했다.
    신리마을 - 김학도 서생면 신암리
  • 김철렴 구술자는 1950년생으로 부산시 기장군에서 태어났다. 골매마을에서 30년간 횟집 운영하다 원전 건설로 인해 신리마을로 이주해 왔다. 신리마을에서는 업종을 변경하여 골메국시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신리마을 - 김철렴 서생면 신암리
  • 김양부 구술자는 1942년 신리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향은 제주도로 할머니 때부터 바다 일을 생계 수단으로 삼아 왔기에 어릴 때부터 바다를 좋아 했다. 해외를 누비면서 원양어선 일을 했던 구술자는 신리마을에 논농사를 하다 태풍 피해 후 배 농사를 했다.
    신리마을 - 김양부 서생면 신암리
  • 김말연 구술자는 1955년 부산 기장군 정관읍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가족 모두가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어 집안 살림을 도맡았다. 새마을 공장에 다니다 집안 형편이 나아질 쯤 결혼해 신리마을로 왔다. 결혼 후 남편과 함께 과수 농사를 일궈낸 추억이 있다.
    신리마을 - 김말연 서생면 신암리
  • 김경완 구술자는 1968년 신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 서생초등학교와 서생중학교를 졸업 후 16세 바로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다양한 직업을 하며 생활비를 벌어서 가정살림에 보태었다. 낚싯배 운영을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그 일을 이어 오고 있으며, 현재 신리마을 이장이기도 하다.
    신리마을 - 김경완 서생면 신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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